Column

韓国の人気アイドルグループだったG.O.Dの「お母さんに」という歌の歌詞には、涙ぐましい母と息子の愛が込められている。

 

(歌詞)

昔からうちは貧乏で みんながしていた外食も数え切れるほどしかなく 仕事で母が家にいない時は いつも一人で食べていたインスタント麺 そんな食事にもうんざりして 美味しいものが食べたいと駄々をこねた

そしたらお母さんは仕方なく非常用のお金を取り出して注文してくれた ジャージャー麺一つでとても幸せだった だけどお母さんはなぜか食べなかった お母さんはジャージャー麺が嫌いだと言った 母さんはジャージャー麺が嫌いだと言った

そんな風に生きて そんな風に悔やんで 涙も流して またそんな風に生きて とても痛くて でもまた笑って、、、

 

母がジャージャー麺を嫌ったのではなく、息子が好きだったのである。母はジャージャー麺を食べる幸せよりも、ジャージャー麺を食べさせる幸せの方が良かったのだ。息子はジャージャー麺を食べて幸せになり、母はジャージャー麺を食べさせて幸せになった。しかしこの母の愛の歌はなぜ悲しいのだろうか。息子が一人でジャージャー麺を全部食べてしまったから悲しいのだろうか。母がそれを食べられなかったから私たちは悲しくなるのだろうか。そのジャージャー麺の器から、この世では味わうことができない愛を味わえたから悲しいのだろう。

 

韓国の実家に行った時、母をヘウンデに連れて行き刺身を食べさせた。母が食べられずにいることも知らず、私は腹一杯に食べた。息子の分がなくなるといけないから、食べなかったのではない。母には刺身を噛む歯が無かったのだ。私はそんなことも知らずに一人で満腹になっていた。母は歯がないのに、なぜ喜んでついて来てくれたのだろうか。母は、自分に歯がないことに気がつかない息子、歯医者のお金も渡さない息子と一緒に、息子の大好きな刺身屋さんに行ったのだ。

 

不思議だ。今はジャージャー麺を思う存分食べられるのに、母に大盛りのジャージャー麺も買ってあげられるのに、悲しいのは同じである。「そんな風に生きて そんな風に悔やんで 涙も流して またそんな風に生きて とても痛くて でもまた笑って、、、。」なぜ悲しいのだろうか。後悔と涙と痛みと喜びとが愛が生んだ息子だからではないろうか。愛は後悔も生み、涙も生み、痛みも生む。母の愛を悟る時、後悔し、痛み、泣くしかない。親孝行がどんなに大きくても、母性にはかなわないからである。故郷の家・東京に住む80を過ぎた一人のお婆さんはクリスチャンではないが、月に一度ある祈祷会によちよちと歩いて来られる。その方の祈祷課題を聞くと、息子が病気なので祈ってほしいとのことだった。

 

この愛は悲しい。その悲しみに打ち勝つ方法はない。「でもまた笑って、、、」と、この歌を終わらせよう。もっと愛すべきものが残っているから。食べる喜びよりも食べさせる喜びがあり、愛される喜びよりも愛する喜びが、私たちの人生にはまだ残っているのだから。「でもまた笑いましょう。」これからも愛が流れていくために。

 

 

한국의 인기 아이돌 그룹이었던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애절한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이 있다.

(가사)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었던 것이 아니고 아들이 좋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자장면을 먹는 행복보다 자장면을 먹이는 행복이 더 좋았던 것이다. 아들은 자장면을 먹어서 좋았고 어머니는 자장면을 먹여서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 노래는 왜 슬픈 걸까. 아들이 혼자 자장면을 다 먹어버려서 슬픈 걸까. 어머니가 자장면을 먹지 못한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걸까. 그 자장면 그릇에서 세상에서 만나지 못하는 사랑을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집에 갔을 때 해운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회를 사드렸다. 어머니가 많이 드시지 않는 것을 눈치를 채지도 못하고 맛있게 먹었다.아들 먹을 것이 없을까 봐 회를 드시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회를 씹을 이가 없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배부르게 먹었다. 어머니는 이가 없어 회를 씹지도 못할 것을 알면서 왜 따라 나선 것일까. 아들은 어머니의 이가 없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치과 치료비를 보태주지도 않았지만 아들이 회를 좋아하니 횟집으로 따라 나섰다.

 

이상하다. 이제 자장면은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는데 어머니에게 자장면을 곱배기로 사드려도 왜 여전히 슬프기는 마찬가지일까.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왜 슬픈 걸까. 후회와 눈물과 아픔과 기쁨이 다 사랑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후회도 낳고 눈물도 낳고 아픔도 낳는다.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후회하고 아파하고 울 수 밖에 없다. 효도가 아무리 커도 모성을 이길 방법은 없으니까. 고향의 집 동경에 사시는 여든은 족히 넘으신 할머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한달에 한번 있는 기도회에 아장아장 아기 걸음마로 내려오신다. 그분의 기도 제목은 아들이 아프니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이 사랑은 슬프다. 그 슬픔을 이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다시 웃고”로 이 노래를 마무리하자. 더 많이 사랑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으니까. 먹는 기쁨보다 먹이는 기쁨이 있고, 사랑받는 기쁨보다 사랑하는 기쁨이 사는 날 동안 아직 남아 있으니 “하지만 다시 웃자”. 사랑이 또 흘러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