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베스도는 바울의 혐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로마에 사건을 보낼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에 유대왕 아그립바 2세가 찾아왔습니다. 신임 로마 총독에게 축하의 뜻을 가지고 유대의 왕이 공식방문한 것입니다. 지역의 유력자들은 왕과 총독의 회동에 빠짐없이 인사를 왔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왕과 총독과 모든 유력자들이 화려하고 위엄있는 옷을 입고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피의자 진술을 듣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모으시고 바울을 세워 복음의 설교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선교의 의지가 있으면 들어야 할 사람은 하나님이 모아 주십니다. 찾아가든 찾아오든 듣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전도자의 임무입니다.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찾아야하는 것은 사람을 개조시킬 방법이 아니고 복음을 지속가능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선교가 진전되는 유일한 방법은 복음이 일어나 말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익이 진실을 먹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진실을 진실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교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알고 있을 때 침묵하는 것도 진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을 드러내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 진실을 말해 줄만한 용기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진실을 드러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기다리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해주는 한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데 용기가 필요 없는 세상일 겁니다. 진실이 편만한 세상, 진실을 말하면 믿어주는 세상,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세상입니다.

 

바울은 외롭게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이고 그것이 진리임을 말하던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바랬던 것은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것 때문에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이라는 것이 편만하게 전해지는 세상이었습니다. ‘진실하게 살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아가 ‘용기가 없어도 진실을 진실대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진리 앞에서 항상 담대한 성도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