箴言 잠언12:22

【事実と真実】【사실과 진실】

 

箴言12:22 偽りのくちびるは主に忌みきらわれる。真実を行なう者は主に喜ばれる。
잠언12: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箴言で真実と嘘というテーマは対照的に繰り返します。あったことを言えば、それは事実であり、なかったこと言えば嘘です。だから意図した偽であれば、神の断罪を避けることができません。ところが、真実と偽りにはより複雑な構造が隠れていると思います。まず事実と真実を見分ける必要があります。`なかったことをあったように言うなら明らかに偽りですが、間違い、歪曲や欺瞞によってそれを事実として信じてしまった人の唇については何と言えばいいでしょう。それは真実なのでしょうか、偽りでしょうか。

▶잠언에서 진실과 거짓은 대조적으로 반복돱니다. 있는 것을 말하면 그것은 사실일 것이고 없는 것을 말하면 거짓일 것입니다. 그래서 의도된 거짓이라면 하나님의 정죄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1차적 의미를 넘어서 진실과 거짓에는 더 복잡한 구조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과 진실을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없는 사실을 꾸면서 말하는 것은 분명 거짓이지만 실수와 왜곡과 기만에 의해 그것을 사실로 믿은 사람의 입술은 무엇이라고 해야 옳겠습니까. 그것은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確かに真実は事実とは異なるものです。事実とは客観的に立証可能なものです。刑事訴訟法で’事実の認定は、証拠による’と規定しています。法で争うとき事実を証明する証拠というのは、現実的な事実として存在しいていて観察と経験を通し、今も確認可能なものを証拠として認めます。それが普遍的な意味の事実です。

▶진실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실이란 객관적으로 입증가능한 것입니다. 형사소송법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한다고 규정합니다. 법을 다툴 때 사실을 증명해야하는 증거는 현실적인 사실로 존재했었고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지금도 확인 가능한 것만 증거로써 인정합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의미의 사실입니다.

 

▶それでは、真実と事実はどのように違うのでしょう。真実の辞書の意味は、「歪曲、隠蔽、錯誤を排除して明らかになること」、すなわち偽りのない事実です。とりあえず事実でなければ、真実にはなれません。しかし、事実であると信じていると言いても、それが真実であることには限りません。観察者のミスや歪みのために、実際には真実と一致しない可能性があるからです。だから、真実であるためには解釈の余地が残されています。事実確認のための正当な解釈を経させたことが真実です。

▶그렇다면 진실과 사실은 무엇이 다를까요. 진실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 아닌 왜곡과 은폐, 착오를 배제했을 때 밝혀지는 것’, 즉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면 진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실인 것도 아닙니다. 관찰자의 실수나 왜곡때문에 사실이 진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이 진실이 되기까지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확인을 위한 정당한 해석을 거친 것이 진실입니다.

 

▶真実のためには騙されてはいけません。法は主観的証言より、客観的な証拠をより重視します。物事の証拠が優先です。物事を観察した観察者の意見が含まれている証言は事実性の純度が落ちるからです。だから、誰が見ても同じように解釈できる客観的内容だけが真実になります。だれかにによって納得され、理解され、説得されたとしても、事実ではないことがあります。すべからく真実だと言えば、それは歪みであってはならず、誤解であってもならず、勘違いがあってもいけません。欺瞞もあってもいけません。それが真実です。歪んだことを事実であると信じ込み、主張しても、それが真実になることはありません。

▶진실하려면 속지 말아아합니다. 법은 주관적 증언보다 객관적 증거를 더 중시합니다. 사물에 대한 증거가 우선입니다. 사물을 관찰한 관찰자의 해석이 포함된 증언은 사실성의 순도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동일하게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 내용만이 진실로 편입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에 의해 납득되고 이해되고 설득되었다고해서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왜곡되어서는 안되고 오해해서도 안되고 착각이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기만당해서도 안됩니다. 그래야 진실입니다. 왜곡된 채 사실이라는 신념 아래에서 주장할지라도 그것이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偽りのくちびるは主に忌みきらわれる。真実を行なう者は主に喜ばれる。」恐れですが、愚かさにより歪曲され、欺瞞されたことを口にすることは偽りの唇です。一方、状況と文脈と理を考慮し、事実を確認して正当に解釈を済ましたことが真実です。前者は神に忌みきらわれる、後者は神に喜ばれます。ユーチューブを見て知らない事実を発見するようでも簡単に事実と真実を区別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その論調のまま確信に満ち運ぶ人が恐いです。付和雷同は事実ではなく、扇動です。メディアの基調や意見は真実ではないばかりか、事実でもない場合があります。メディアが換骨奪胎して幼稚な形容詞を捨て、客観的言語を使わない限り、時代の証人として信頼され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두렵지만 어리석음으로 인해 왜곡되고 기만된 것을 말하는 것은 거짓입술입니다. 반면에 상황과 문맥과 이치를 고려하려 사실을 확인하고 정당하게 해석한 것은 진실입니다. 전자는 하나님께 미움을 받고 후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했습니다. 유투브보면서 모르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같아도 그리 간단히 사실과 진실을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유투브를 보고 그 논조 그대로 확신에 차서 실어나르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부화뇌동은 사실이 아니고 선동입니다. 언론의 기조나 의견은 진실이 아닐뿐더러 사실조자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이 환골탈태하여 유치한 형용사를 버리고 객관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한 시대의 증인으로 신뢰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聖書に基づいていない牧師の主張も事実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事実であるかもしれない。だから正当な解釈というツールで牧師の主張は聖書に批判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自分の主張とメッセージが聖書的でない批判を甘受しなければ、また正当な議論を通じて、それが神の言葉であることを証明しなければならいのです。多くの人は講壇の権威を心配しますが、講壇が良心と知性を持って浄化されれば、牧師の説教が神の言葉の宣言であることを信じるでしょう。真実を語るためにはまず事実を見分ける必要があります。ところが、何が事実なのかをわきまえるのが大変な時代です。これは熾烈なことです。それでも避けられないのは、クリスチャンにおいて分別力は美徳ではなく、命だからです。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목사의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해석이라는 도구로 목사의 주장은 성경적으로 비판을 받아야합니다. 자신의 주장과 메세지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감수해야하고 또 정당한 논쟁을 통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강단의 권위를 걱정하지만 강단이 양심과 지성으로 정화되면 목사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인 것을 믿을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려면 사실을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거짓은 버리고 사실을 말해야하는 1차적 교훈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인지를 알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입니까. 그것이 치열한 일입니다. 그래도 피해갈 수 없음은 그리스도인에게 분별은 미덕이 아니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