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0:1-11

칼바르트는 우리가 성경을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을 우리 삶에 들어오시게 하고 우리 삶에 참여하시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으려고 하지만 정당한 성경읽기의 방법은 스스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성경의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계시하는 세계는 명확한 인격성을 가진 하나님의 세계이기 때문에 성경의 메세지를 우리의 경험의 세계 안에 억지로 구겨 넣어서는 안된다.

 

유진 피터슨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이 책을 먹으라』는 책을 썼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성경은 건조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독자는 그것에 다시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수분은 동결건조된 텍스트를 해동시키는 믿음일 것이다. 그래서 피터슨은 기록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죽고 끝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부활을 기다리는 것이다. 말씀은 과연 믿음과 화합할 때 성육신하여 시대와 인생 가운데 살아나온다.

 

그것을 위해서는 인격성이 필요하다. 피터슨은 책에서 「렉치오 디비나」를 소개한다. 라틴어의 「독서(Lectio)」와 「신적인(divina)」이 합쳐져서 거룩한 독서라는 의미이다. 렉치오 디비나를 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를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 첫째, 렉치오,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메디타티오, 텍스트를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오라티오, 텍스트로 기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콘템플라티오, 텍스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네 가지 요소가 서로 작용할 때 레치오 디비나는 실제로 이루어진다. 피터슨은 읽는 말씀과 사는 말씀 사이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볼 수 있기를 바랬다.

 

계시록의 오늘 본문 말씀에 요한이 두루마리는 받아먹고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쓰다고 하였다.-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무엇이 달고 무엇이 쓴 것일까. 렉치오(텍스트를 읽는다)와 메디타티오(텍스트를 묵상한다)와 오라티오(텍스트를 기도한다)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성경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 어려워하는 것은 콘템플라티오(텍스트대로 산다)이다.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 은혜받기는 쉬우나 은혜대로 살아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콘템플라티오(텍스트대로 산다)가 안되면 나머지 세가지 요소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게 될 것이고 그 말씀이 삶으로 체화되지 않는다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도 결국은 힘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삶에서 대답하는 것이 인격이다. 비인격적으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읽는 사람, 단지 자신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살아내기 위한 성경읽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