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어떤 말을 하면 선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착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말입니까? 무지에게는 그것을 깨우치는 말이 선한 말일 것이고, 분노에게는 화를 가라앉히는 말이 선한 말일 것이다. 약할 때는 힘을 주는 말, 교만할 때는 겸손케하는 말, 분쟁할 때는 중재하고 화합하게 하는 말이 곧 선한 말입니다. 우유부단하고 비겁할 때는 단호한 조언이 선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는 이치를 따져 말하기 보다 위로하는 말이 하는 것이 선한 말입니다. 결국 상황과 필요에 따라 전달력을 가지고 있는 말이어야 선한 말이 됩니다. 좋은 말일지라도 들리지 않으면 선한 말의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분노하거나 낙심하고 있을 때 책임을 추궁하고 책망하는 말은 선한 결과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잠언은 말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잠언 18:4에는 생수와 샘물과 같은 말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말에 적용 대상은 갈급해 있는 사람이겠지요. 또한 전도서 5:2에서는 급하게 말하지 말고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에베소서4:29에서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은 공동체에서 오해가 일어나고 분열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그 상황에 알맞은 말은 선한 말이 되어 듣는 이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대조적 구조는 근심하는 마음은 번뇌이고 선한 말은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말이라는 것의 반대편에 근심과 번뇌가 있습니다. 근심과 번뇌를 가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선한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걱정과 근심의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한 말은 하나님의 평강과 믿음의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평화를 전하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잠언 16:24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이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빵을 주어야 합니까? 복음을 주어야 합니까? 둘 다 주어야겠지요. 그러나 순서는 빵이 먼저입니다. 들리지 않는 이야기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들리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선한 말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선교신학에서 상황화 (Contextualization) 라는 말을 합니다. 상황화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상황 속에서 접촉점을 발견하고 그들의 상황 안에 들어가서 코드를 맞추는 것입니다. 상황화는 문맥화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에 대해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사고방식의 문맥을 이해하고 전도자가 유연하게 변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말은 단순한 친절이 아닌 상황을 파악하여 본질로 비집고 들어가서 기어이 선한 역할을 해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