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2:1-11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22: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22: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성경책을 열면 창세기가 나오고 뒤집어서 펼치면 요한계시록이 나오는데 창세기 2장에 생명나무가 등장하고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장인 22장에도 생명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지만 생명나무는 성경에서 수미쌍관입니다. 두 생명나무 사이에 성경이 들어가 있고 두 생명나무 사이에 인류의 전 역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의하면 에덴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유의해서 읽어보면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것은 선악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생명나무도 함께 있었습니다. 두 나무를 앞에 두고 하나님은 사람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유의해서 성경을 읽어보면 생명나무 실과에 대해서는 먹지 말라고 금지한 조항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악과는 금지였지만 생명나무 실과는 금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터졌습니다. 사람이 약속을 어기고 금지하기로 약속했던 선악과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신속하고 단호하게 하신 일은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금지시키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무도 생명나무로 가는 길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죄인으로 살다가 때가 되면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초 금지하지 않았던 생명나무를 왜 이제 와서 서둘러 단속하신 것일까요? 하나를 먹었으니 둘은 먹지 못하도록 제한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금지하시기 전에 하신 일을 창세기에서 찾아보면 당시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창세기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죄를 알아 수치와 분노에 휩싸여 있는 부부를 위해서 직접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수치를 가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가죽을 취하여 사람의 수치를 가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진노 중에 긍휼입니다. 사랑에 근거한 징계입니다. 추방하는 것은 공의이지만 옷을 지어 입혀준 것은 자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공의와 사랑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도 범죄한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창3:22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미워서 영생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죄를 가지고 영생하는 것은 곧 고통이고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람 안에 죄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불로장생약을 찾겠지만 죄를 가진 육체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저주입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니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육체는 영원히 마음 둘 만한 완전한 곳일 수 없습니다.

 

천국의 소망은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상태, 사랑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영생을 바라는 것이 탐욕이 아닌 소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은 그때에만 영혼의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 중에 긍휼로 생명나무를 숨겨 두셨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고 사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그 심판을 다 지나왔습니다.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은 이제 없습니다. 믿음을 지킨 성도는 잃어버렸던 생명나무를 다시 찾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가 오늘 요한계시록에 등장한 생명나무와 같은 나무인가 봅니다. 인류의 역사 동안 생명나무는 금단의 동산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어린 양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성도는 이제 다시는 저주없이 생명나무를 취할 수 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화염검이 지키던 생명나무 길이 다시 열렸습니다. 생명수의 강이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려옵니다. 생명나무는 열 두가지 실과를 맺고 성도는 어린 양을 섬깁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볼 것이고 다시는 죄의 밤이 없을 것이고 등불과 햇빛도 쓸데 없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 성도를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성도가 소망해야 하는 영생이라면 무릇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보기도

1.크리스마스 콘서트가 15일 주일 오후 4시부터 고향의 집 동경에서 있습니다. 에다가와 사랑의 교회와 고향의 집 동경의 어르신들이 함께 캔들서비스로 예배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소개해야 할 이웃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전도와 기도 부탁합니다.
2.에다가와 사랑의 교회 회당구입에 필요한 재정이 채워지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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