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7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에베소는 당시 최대 25만에서 50만명까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지중해 사회에서 가장 유력한 대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했다고 알려진 화려한 도시이기도 하고 황제숭배를 위해 세워진 신전만 세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를 위한 신전 뿐 아닙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이라는 유명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숭배는 대단히 음란했습니다. 아데미 여신의 축제가 열리면 24개의 젖가슴을 가진 아데미가 행진하고 그 뒤를 자신의 남성을 거세하여 아데미 여신에게 바친 남자 사제 24명이 따라간답니다. 그리고 24마리의 황소의 고환을 잘라 아데미 여신의 목에 걸어주고나면 광란의 제사가 시작됩니다. 집단혼음과 수간까지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사회가 인정하는 이른바 공무원 신분의 창녀가 활동하고 있었을만큼 에베소에서 음란은 일상이었습니다. 에베소는 음란과 우상숭배와 물질의 번영이 공존하는 대도시였습니다.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사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법 밖에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던 55년 무렵에 에베소에 도착해서 교회를 개척했던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상태로 에베소서를 쓴 것은 60년 무렵입니다. 그러니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은 개척된지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신생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장 큰 도시, 무역이 가장 번성한 항구도시, 그러나 가장 음란한 우상숭배와 황제숭배의 거점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아직 어린 교회는 그 문화 안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면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합니다.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바울이 에베소에 개척한 후에 기독교신앙이라는 가치가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을 것이고 에베소의 종교산업은 교회 때문에 위협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경제성이 그 종교성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눈에 티 같은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된 가장 결정적이었던 마지막 사건은 예수님의 성전정결사건이었습니다. 타락한 종교가 경제와 결탁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것을 책망하고 와해시키셨습니다. 종교의 본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시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몰아내셨습니다.

 

이로 인해 상인들 뿐 아니라 제사장들도 손해를 보게되었고 정치와 종교가 힘을 합쳐 예수님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에베소 교회도 에베소 정치와 경제에게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손해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믿음은 타헙하고 후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그 민감한 위기 상황 속에서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지켜야 할 가치를 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의 의무와 책임을 말하기 전에 동기를 먼저 말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오직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의 근본적 이유는 성도가 그날에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날 것이고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기와 소망이 있어서 우리에게 책임과 사명이 주어집니다.

 

에베소의 상황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동경의 상황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가면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우상과 음란과 물질을 숭배합니다. 한켠에 조용히 있으면 내버려두겠지만 교회가 기독교의 구원의 가치와 거룩한 하나님 예배를 세상 속에 발신한다면 반드시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핍박받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의 일이지만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아데미 축제를 책망하다가 반발하는 군중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디모데가 순교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했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믿음의 동기와 소망을 확인하고 성도와 교회의 자리에서 싸울 것과 싸우는 하루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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