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7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핵심적 성질, 사물을 성립하게 하는 절대적 조건이나 성질을 「본질」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3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서 아담은 원죄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태생적이고 천성적으로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창세기 1장까지 가보면 인간의 핵심적 성질이나 인간을 구성하는 조건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성질을 찾아야만 한다면 창세기 3장의 「죄」가 아니고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 하루를 이 말씀과 함께 보냈습니다. 「본래」, 「근본」, 「본질」 등의 말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뜯어보면 그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한국어 공동역은 「본래」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날 때부터」라고 번역했습니다. 일본어 성경들도 「날 때부터(生まれながら)」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로는 「nature」인데 「본질」로 번역이 가능하겠지만 「천성」이라는 말로도 번역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헬라어로는 「φυσις」 인데 「본질」, 「자연 그대로의 조건」 ,「자연적 본능」,「출생」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본질상」이라고 하지 않고 「천성적으로」 또는 「태어나면서부터」라고 번역해도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히브리적 표현인데 누군가의 아들 딸이란 말이 아니라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어서 진노를 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소유격 표현입니다. 뱀이 어미 뱀의 뱃 속에서부터 독을 품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타락의 결과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 본성인 죄는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뱅의 인간론은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이고 신앙에서 그러한 인간이해와 고백은 불가결한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이고 본래적이어서 원죄라고 명명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만 한국어 번역에 있어서 본질이라는 단어 사용은 정체성의 이해에 있어서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노의 자녀」를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마귀의 자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본문을 그렇게 읽은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진노는 어떤 인격체를 은유한 것이 아니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입장을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는 자녀인데 진노를 받아야 하는 자녀인 것입니다. 따라서 진노의 자녀라는 것은 마귀의 새끼가 아니고 공의의 심판 아래 놓여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비록 죄된 인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본질은 마귀의 새끼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샤르트르는 신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본질적 세계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없다고 생각했고 모든 존재는 우연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존재에는 원인도 없고 목적도 없습니다.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의 계획이나 목적이 없으니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만이 실존이라고 했습니다. 샤르트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실존적으로 죄와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태생적 원죄가 자유 의지와 만나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샤르트르가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샤르트르는 믿지 않을 자유를 구가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믿을 자유, 구원얻을 자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본질을 찾아 회복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를 통한 그 본질로의 회복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보기도
1.12월 15일 오후4시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준비와 일정과 은혜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2.예배당 구입 재정이 채워지도록 기도해주세요.
3.12월 22일 성탄예배에 세례받으시는 분들의 믿음의 고백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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