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18-24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6: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큐티교재는 오늘 본문을 18절부터 24절로 구분했지만 어제 영적전투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 20절까지로 일단락됩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1절부터 24절까지가 마지막 인사에 해당합니다.

 

영적 전투를 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령 안에서 깨어서 항상 기도할 것과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복음의 일꾼들이 복음을 더욱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중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전선에서 소총부대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후방지원이 필요합니다. 후방에 있는 포병이 아군의 위치와 적군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확한 좌표 값을 입력해서 포를 쏘아 주어야 아군이 전진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포사격 지원을 받아야 전투력을 상실한 병력과 부상당한 병력이 후퇴할 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후방의 포격입니다. 바울은 약한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고 또한 전선에서 접전하고 있는 자신과 같은 복음전도자를 위해서 중보기도라는 후방 포격을 부탁합니다.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바울은 자신이 적진 가운데로 뚫고 들어가야함을 주저하지 않도록 그 담대함과 용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이 갇힌 몸이 된 것은 악재가 아니고 이 일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게 하는 호재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담대해져야 합니다. 바울은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담대하다는 것은 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치고 들어가는 용기입니다. 적진은 무섭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에게 적을 교란하고 궤멸시킬 수 있는 포사격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힘입어 적진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상무대 육군보병학교라는 곳에서 병역을 했는데 당시 부대 표어가 「나를 따르라」였습니다. 처음에는 멋있어 보였는데 따라다니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보병은 어찌되었건 병력을 이끌고 뛰어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밤낮 산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같은 상무대 안에는 육군포병학교도 있었는데 포병의 표어는 「알아야 한다」였습니다. 보병은 뛰어야 하지만 포병은 알아야 합니다. 보병은 뛰어다녀야 하지만 포병은 움직이면 안됩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계산된 각도와 정확한 방위 값에 따라 틀림없이 포격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한다」는 포병의 표어는 사실 보병 입장에서 더 절실합니다. 포병이 알아야 보병이 살기 때문입니다. 좌표 입력 잘 못하면 다 죽습니다. 그래서 포병이 보병을 도와주는 길은 대포들고 같이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고 관측과 통신과 계산을 위해서 움직이지 말고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병은 공부해서 아는 길이 사는 길이고 그것이 곧 우리같은 보병을 살리는 길입니다.

 

복음선교의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전투의 좌표를 알아야 기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가 자신의 필요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해보십시오. 10분 후에 기도의 언어가 사라집니다. 기도해보면 우리가 구하고 싶은 것이 사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중보의 세계로 더 넓게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울타리를 넘어갈 때 비로소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알지 못하면 기도는 추상적이고 실체없는 중언부언의 말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처럼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성도와 선교현장의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싸우는 중보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 가면 교회를 방문하는 기회가 많은데 그중에 제일 배우고 싶은 것이 중보기도팀입니다. 교회 내외부의 중보기도를 수집하고 정기적으로 그것을 위해서 모여서 기도합니다. 어떤 교회는 24시간 기도가 끊이지 않도록 당번을 정해서 릴레이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 정확하게 바라보고 대포를 쏘아주는 전투력입니다.

 

군대 이야기를 조금만 더한다면 제가 제병협동훈련에 참가했다가 전투시범 직전에 부상을 당해서 본부에서 대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만 사령관들과 사단장들이 모여서 모의전투를 관전하는 곳에 사병인 저도 끼어 있습니다. 기갑과 포병의 화력이 산과 들을 때려부술 때마다 별들은 근엄하게 박수를 쳤습니다.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보병은 산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지만 제 눈에는 마치 개미가 기어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보병은 근사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병 하나가 정상에 올라서서 자기 몸보다 큰 깃발을 흔들기 시작하더니 깃발을 정상에 내려 꽂았습니다. 그때 장군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기립해서 박수를 치더군요. 다리를 다친 저만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순종하여 하는 일과 중보의 기도는 강력하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행동하지 않으면 깃발을 꽂을 사람이 없습니다. 대포가 아무리 강력해도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담대히 들어가서 땅을 취해야하는 전선의 보병들은 또 얼마나 중요합니까? 각각의 역할이 있습니다. 바울은 보병이고 교회들은 포병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축복합니다. 우리도 그 축복의 수혜자들 중에 한 명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전방에 나가 있지 않다고 해서 역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전투와 선교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시작합시다. 기도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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