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12月8日 主日礼拝
「メリークリスマスの秘密」
「메리 크리스마스의 비밀」
黙示録 22:20、21
요한계시록 22:20、21
趙鏞吉 牧師
조용길 목사

 

크리스마스에는 캐롤이 들려오고 가는 곳마다 트리가 예쁘게 장식됩니다. 아이들에게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추억의 방 중에 가장 깊은 곳에 예쁘게 간직될 겁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 교회 담 밖에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즈음이 되면 그런 저의 눈에도 세상의 색깔들이 달라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 해 동안은 볼 수 없었던 반짝이던 색깔들이 여기저기에 걸리기 시작하더군요.

 

캐롤송은 그 색깔을 “오색 빛이 찬란한 거리 거리에 성탄 빛”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은 오색 빛의 찬란한 성탄 빛을 밝힌 것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눈이 오면 그 색깔들은 더욱 빛났습니다. 동경도 어지간해서는 눈이 오지 않지만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좋겠습니다. 좀 불편하겠지만 하얗게 쌓인 세상 위에 오색 빛의 성탄 빛이 켜지고 탄일종이 은은하게 들리면 죄에 지치고 세상에 지친 성도의 죄를 덮어주고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내리는 것 같을 겁니다.

 

이사야의 시적 표현을 빌려 와야 하겠습니다.
1:18 たとい、あなたがたの罪が緋のように赤くても、雪のように白くなる。たとい、紅のように赤くても、羊の毛のようになる。
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크리스마스의 하얀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거리에는 즐거운 캐롤송이 들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넘쳤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과 시내에 나가 흥청망청 놀았습니다. 그것을 예수 믿기 전의 허랑방탕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면 교회 안에서는 잘 통용됩니다. “너도 은혜받고 사람됐구나” 라고 하시죠. 그 말은 분명히 맞습니다만 그러나 저에게는 예수 믿지 않던 때의 크리스마스의 기억도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으로 들어온 저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저를 사랑하셔서 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오시고 나중에 믿음이 생긴 순서입니다.

 

ローマ5:8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身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이 시작된 것은 먼저 회개했을 때가 아니고 아직 죄인 되었을 때였습니다. 뒤돌아보면 비록 불신의 시간에서도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때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간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은 평생의 과제입니다. 제 안에는 여전히 허물이 많고 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고 죄를 버리지 못하는 악한 모습과 위선적인 모습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고 숨길 수 있을만큼 겨우 겨우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다르십니까?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제가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바뀐 것은 없습니다. 본질 상 소망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닫고 인정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저의 간증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어린 시절 비록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지만 추운 겨울 한가운데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세상은 더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불신자 가정인 우리 집 안에도 반짝이는 트리와 장식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평소와는 다른 특별히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텔레비전의 성탄특집 프로그램은 재미있었고 집은 따뜻했습니다. 거짓말도 많이 하고 나쁜 짓도 많이 했는데 산타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는지 선물을 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신자 가정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에 은혜를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믿지도 않는 예수님 생일 덕분에 어릴 적 겨울은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온기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빨간색과 초록색이 어울려 있고 그 위에 금가루를 뿌린 것 같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친구들과 주고 받았습니다. 의미도 모른 채 메리 크리스마스를 적은 카드를 교환했습니다.

 

그런데 메리 크리스마스를 Merry X-mas 라고 적기도 하더군요. 그것이 Christmas보다 적기가 편해서 저도 그렇게 따라 적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는 몰랐습니다. Christ가 왜 X로 바뀌는지 몰랐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Christ가 Χριστός 더군요. 영어 알파벳의 엑스가 아니고 그리스어 알파벳의 카이입니다. 이것이 라틴어 세계에서 예배라는 의미의 마사와 결합되어서 Christus massa가 되었다가 영어로 와서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날입니다. 그것이 원래 크리스마스의 의미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로 은혜 받던 내가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은혜를 받고 있으니 이것이 웬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더 특별해지고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편만하게 있던 은혜가 나의 인격성 안에도 들어오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Merry만 있으면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즐겁게 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그것이 메리한 크리스마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키리스토를 마사해야만 메리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예배해야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메리 크리스마스의 비밀입니다.

 

오늘 본문인 성경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은
22:21 主イエスの恵みがすべての者とともにあるように。アーメン。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은 이렇게 끝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며 성경은 끝납니다.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행사가 아니고 세상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오늘 오후 예배를 마치고 나면 선교팀과 함께 에다가와의 집들을 방문하면서 작은 선물을 건네 주고 축복하며 전도하려고 합니다. 함께 참가해 주십시오.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교회의 담장을 넘어가는 것이 에다가와 사랑의 교회의 선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아직 오기 전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대강절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예배하기 때문에 진정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영혼이 행복해지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Χριστός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설교 본문으로 했습니다. 11월에 이어 12월은 요한계시록으로 큐티를 나누고 있습니다. 에다가와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은 요즘 열심히 큐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하지 못하고 계신 분은 큐티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신뢰하는 신앙의 친구들과 모여서 묵상을 서로 나누십시오. 추운 계절에 큐티는 우리의 영혼의 체온을 유지시켜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지 않는 시간, 삶의 현장에 있는 시간에 큐티로 하나님과 교통하시기를 권면합니다.

 

큐티를 어떻게 하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만 제일 좋은 방법은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그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큐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주 비밀스럽고 인격적인 말씀을 여러분만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속삭이듯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공개된 비밀입니다. 공개되어 있지만 비밀스러워서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알 수 있게 가르쳐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말씀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조명해주시지 않으면 성경에 인쇄된 활자를 읽는 것으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적인 능력만으로는 말씀을 알 수 없고 영적인 추구만으로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지적으로 이해해가고 영적으로 깨달아 가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하고 큐티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다들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바빠서 큐티를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니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앞에 더 나와서 앉아야 합니다. 충현교회 선교팀이 연주로 예배를 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연주가 더 근사한 것은 다들 60대 이후에 악기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충현교회에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악기 하나씩 다 배우자고 권했고 그대로 실천해서 지금 충현교회는 예배음악이 풍성합니다. 교회 안에 몇 개의 오케스트라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집사님께 질문했습니다. 50대나 60대에 악기를 배우기에는 현역에서 일하고 있을 때라 시간내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라고 했더니 물론 바쁘지만 열정이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열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처음엔 불어도 소리도 안 나옵니다. 겨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지만 제대로 소리를 내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짧은 곡이라도 끝까지 연주하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 때의 기쁨을 향한 열정입니다. 그래서 바쁘고 피곤하지만 또 불러 가는 겁니다.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하게 되었을 때 그 피로와 수고는 다 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무대에 서는 것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큐티를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이 말씀의 열정이 되고 기쁨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면 말하고 싶어지고 나누고 싶어집니다. 말씀의 묵상과 성도의 교제가 깊어지면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되실 겁니다.

 

큐티는 바빠서 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과 내 영혼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 안 하는 것입니다. 해가 바뀌면 내년부터는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노트 사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고 지금 시작하십시오. 2019년이 끝나기 전에 시작하십시오. 손바닥에 쓰든지 돌에다 쓰든지 어디에 쓰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하십시오. 우리 안에 널려 있던 신앙의 조각들이 삶 안으로 정리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12월 30일에 책을 사서 12월 31일 하루만 큐티한다고 해도 책값은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말씀으로 택했습니다. 마지막 말씀이라고 한 것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이고 성경의 마지막이고 세상의 마지막 말씀이고 기다림의 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큐티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을 향해 치 달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의 심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심판은 언제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야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지금 큐티의 세계 안에서는 재림하신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어드벤트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을 동시에 기념하는 신비적이고 역설적인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실 일들을 먼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오심을 동시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캐롤송 틀고 오시지 않습니다. 마구간의 아기 예수로 오시지 않고 십자가에게 힘없이 죽어가는 사형수의 모습으로 오시지도 않습니다. 심판자로 오십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심판의 근본적 이유는 택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택함받은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함 없이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기다림의 계절 앞에 서서 자신을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십니까? 주님 오시는 것은 반갑지만 오시기 전에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아직은 마라나타를 고백하지 못하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이 포인트입니다. 우리에게 주님 오시옵소서 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 그 걱정거리,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십시오. 지금 그리스도 밖에서 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일이면 주 안에서 벌고, 아이들 양육하고 교육하는 일이면 그 일을 주 안에서 하고, 결혼하는 일이면 주 안에서 하고, 먹고 즐기고 노는 일이라도 주 안에서 하십시오. 누구보다 성실하고 충성되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주님 안에 있어서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하는 성도의 삶을 사십시오. 신앙도 삶도 그때 가장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그것을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을 의식하지 않는 과정은 어리석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릇된 종말론에 현혹되는 것은 삶의 자리를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속한 종말론적 신앙은 우리의 일상은 담대하고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무대는 지금 주어진 일상입니다. 그 일상을 우상삼지 말고 하나님 안에 일상을 복종시켜 나가야 합니다. 반드시 끝이 옵니다. 그러나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택함받은 성도는 그날에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다같이 사도요한의 고백을 따라 어드벤트에 함께 고백합시다.
22:20 アーメン。主イエスよ、来てください。

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이 진실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지막 말씀을 따라 또 하나 다짐합니다.
22:21 主イエスの恵みがすべての者とともにあるように。アーメン。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가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전하는 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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