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1月1日 新年礼拝 신년예배
「過去との和解」
【과거와의 화해】
イザヤ43:18-21
이사야 43:18-21
説教 趙鏞吉 師
설교 조용길 전도사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런 정의가 반갑지 않겠지만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삶은 분명히 죽음을 전제로 시작됩니다. 회피해 보아도 죽음은 도망가는 인간의 뒤를 어김없이 쫓아옵니다. 삶이라는 원인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맺게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죽음의 평범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일반적입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 죽음에 대해서 놀라는 것뿐입니다. 죽음이 언제 놀랄만큼 새로운 것이었습니까? 세상은 죽음으로 편만합니다. 죽음은 벼락같은 것이 아니고 파도같은 것입니다. 어느날 예기치않게 내려치는 날벼락같은 것이 아니고 질서정연하게 밀려오는 파도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치 바닷가에 파도가 밀려오듯 한 세대가 죽고 또 그 다음 세대가 밀려와 죽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 평범하고 일반적인 질서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에게 날벼락같은 죽음이 다가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다는 것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일상입니다. 이것만 기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살면 신앙생활의 반은 성공입니다. 죽음 앞에서 분노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과 용서와 겸손과 양보는 때려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알 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망각하기 때문에 어리석음과 교만이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한 목사님이 암투병을 시작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제목을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고 했더군요. 죽음이 전제되고 나면 살아있음의 하루가 기막힌 감사입니다. 정초부터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은 매일이 새로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2019년의 끝이 없는 2020년의 시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그 2020년도 2021년에 의해 무가치해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환영하는 2020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다. 2019년은 생명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1분1초의 어김도 없이 자신의 시간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 파도인 2020년을 맞았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잘 보내줍시다. 생명을 다하고 죽은 2019년에게 좀 정중해지면 좋겠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다사다희(多事多喜) 다사다복(多事多福) 도 있었지 않습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좋았던 것이든 괴로웠던 것이든 지나간 것에 의미를 찾아내려면 그것에 지배받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과거의 기억에 지배받는 것은 죽은 것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2019년의 시간은 우리를 지배했지만 이제 2019년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회개한 신앙은 열매를 맺습니다. 여전히 분노와 미움 가운데 있다면 아직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해서 열매가 맺어가고 있다면 더는 자신을 괴롭히면 안됩니다.

 

고린도후서 7:10절에
10 神のみこころに添った悲しみは、悔いのない、救いに至る悔い改めを生じさせますが、世の悲しみは死をもたらします。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회개는 근심을 동반하지만 살게 하는 근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근심이 아닌 과거에 대한 근심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지나간 시간의 자신의 죄를 용서해야 형제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20:23 あなたがたがだれかの罪を赦すなら、その人の罪は赦され、あなたがたがだれかの罪をそのまま残すなら、それはそのまま残ります。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세상엔 억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억울하고 원통한 일도 잊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도 생명을 다하고 죽은 시간과 함께 보내버리십시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발목이 잡히면 안됩니다. 현재에 안주해서도 안됩니다. 막연한 미래를 동경할 필요도 없습니다. 과거는 성찰하는 것이고 현재는 충실해야 하는 것이고 미래는 소망하는 것입니다.

 

욥기11:17,18
17 あなたの一生は真昼よりも輝き、暗くても、それは朝のようになる。
18 望みがあるので、あなたは安らぎ、あなたは守られて、安らかに休む。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어둠의 날, 고통의 날, 어려움의 과거를 빨리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묶이지 마십시오. 달력을 보십시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습니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특별히 원수짓고 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말에 생각해보니 원망이 있을만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보내고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그대로 해를 넘기기 싫어서 연락을 했습니다.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마음을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임종을 맞는 2019년이 12월31일에 유언으로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분을 품어도 잠자리에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해를 넘겨 증오하면 내 영혼이 시듭니다. 그래서 사과와 화해의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나를 옭아매는 이전 일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마십시오.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43:18 先の事どもを思い出すな。昔の事どもを考えるな。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43:19 見よ。わたしは新しい事をする。今、もうそれが起ころうとし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のか。確かに、わたしは荒野に道を、荒地に川を設ける。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옛 일을 잊어버리면 이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시행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옛날 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신년에 하나님의 선물로 자유를 받아 가십시오.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화평하십시오. 그러면 자유해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천국과 가장 많아 닮은 감정입니다. 과거와 화해하고 2020년을 맞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