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요한복음 8:12-20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3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8:19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신학교 때 즉석에서 에세이를 쓰라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신학생들은 소재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나는 게을러서 강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너도 어서 나가라는 듯 교수님은 강의실 불을 끄고 나가버렸습니다. 더 안락해졌고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창을 절제하여 설계한 노출 콘트리트 강의실에는 최소한의 빛만 들어와 분위기는 어둡고 편안했습니다. 드물게 유채색을 가진 물건들이 주위에 있었으나 자신의 색을 발하지 못하고 무채색 안으로 빨려 들어가 흑백의 세상을 이루었습니다. 내가 입은 옷도 얼굴도 모든 것이 복사기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온통 회색이었습니다.

 

작은 창밖으로 하늘이 보이는 중원이 있었는데 그 중원에는 햇살이 여린 나뭇잎들을 비추고 있었고 부드러운 바람은 그것들을 가끔씩 흔들어 댔습니다. 유채색은 거기에만 있었습니다. 그 풍경을 에세이로 써서 과제로 내고 싶었지만, 그 빛을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그 바람을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언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강의실의 흑백과 창밖의 초록은 강렬한 채도대비를 이루고 잎은 마치 초록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백색광이 잎에 와 닿을 때 잎은 자신과 같은 색인 초록을 제외한 나머지 빛의 색을 모두 흡수합니다. 그러나 오직 초록빛만은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기 때문에 초록이 발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잎은 실제로 초록빛을 반사하며 발산합니다. 그래서 초록은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자신의 것과 다른 것을 받아들였는데 자신의 것이 더욱 강렬하게 발산된다니. 초록에 초록을 더하면 더 많은 초록이 될 줄 알았더니 초록을 반사해야 찬란한 초록이 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초록이고 싶으면 빨주노와 파남보를 먹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찬란해질 것입니다. 무채색 공간에 펼쳐진 초록의 발산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색을 혼합하면 명도가 낮아지지만, 빛은 혼합하면 명도가 더 높아집니다. 빛이 혼합되면서 명도를 높일 때 우리는 그것을 화사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단색광들이 한곳에 모이면 백색광이 되어 빛은 눈부시게 부서져 내립니다. 무채색인 나는 그 풍경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무채색에 흡수된 채 초록의 화사함을 바라보던 나는 슬그머니 중얼거리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 나무도 이 공간도 내 인생도 다 본래 흑백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빛 비추어 주시면 각자에게 숨어있던 찬란한 색을 발할 겁니다. 바람이 한 번씩 불어주면 나도 우아하게 흔들리고 싶습니다. 한여름 시들어가는 잡초 같은 인생에도 빛 비추어 주시면 초록의 은사를 발산할 겁니다. 나에게도 빛 비추어 주세요. 그렇게 채광(採光)을 위해서 발광(発狂)했습니다. 돌아보니 대견한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빛은 속성상 감춰지거나 숨겨지지 않습니다. 거부해 보아도 빛을 막을 방법은 없듯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해 보아도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빛은 홀로 있지 않고 반드시 비췹니다. 손으로 빛을 막아보아도 빛은 비추어야 할 곳을 기어이 비추고야 맙니다. 내가 헤아려본 예수님의 세 번째 에고에이미는 세상의 빛입니다. 첫 번째는 내니 두려워 말라 였고 두 번째는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시면 인생이라는 초록은 그것을 투영하든 반사하든 빛을 발할 겁니다. 하나님이 빛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어이없이 벌써 일 년의 1/12이 지나갔습니다. 내일은 월례회와 총회가 있습니다. 또 한 번 페스트 트랙이지만 12시 30분에 있는 정기총회에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