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태복음 27:45-56
27: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27:48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27:49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27: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27: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27: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성전 안에는 휘장이 있는데 이 휘장에 의해 지성소와 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지성소 밖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길이를 환산하면 휘장의 길이는 대략 15미터 정도였습니다. 그 장엄하고 엄격한 휘장 안에는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쫒겨 나왔듯이 사람은 본래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사람은 죄 되었고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하시지 못하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하루 휘장을 통과하여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 예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은 기뻐서 환호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의 십자가 본문에서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로 나누어졌다고 했습니다.

 

휘장이 둘로 나누어진 사건은 인간의 역사를 둘로 나누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금단의 휘장이 폐하여지고 하나님의 뜰 지성소로 들어가는 가는 길이 오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후 기원후 70년에 성전은 로마에 의해 완전하게 파괴됩니다. 하나님이 로마에 의해 파괴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로마를 통해 성전을 이 땅에서 제거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4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언약이 세워짐으로써 옛 언약이 갱신된 것입니다.

 

교회 건물을 지으면서 성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거룩한 예배의 처소라는 의미로는 틀리지 않겠습니다만 신학적으로 따진다면 바르지 않습니다.


이제 성전은 없고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는 예배당이 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성전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예수의 영인 성령을 모신 성도의 마음 안에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19-20에서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말합니다.

 

지성소가 공개되기 위해서는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휘장이 찢어지듯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격리는 해제되고 소통은 재개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대제사장 혼자서 들어갔지만 이제 나도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들어가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이 외쳤던 만인제사장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인제사장은 개신교 500년 역사 속에서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종교개혁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목사는 성도를 지배하려 하고 성도는 주체적으로 하나님을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종교에 종속당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역사를 보아도 그것이 타락의 구조입니다.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누군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교직과 성도의 합작에 의해 시대 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격리가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거룩한 제물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당이든 유튜브이든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예배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화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종교적 의식이 배제되고 자신의 방에서 화면을 통해 예배드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예배의 조건과 주체를 확인합니다.

 

이번 주에 드리는 부활절 예배가 조촐하여 서운할지 모르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가 어쩌면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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