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8:11-20
8: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8: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8: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8: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 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성경은 부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부와 풍요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하던 신앙이 경제적 안정과 부의 축적과 함께 하나님에게서 그 마음이 떠나고 부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압니다.

 

곧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복을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게 된다는 심각한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인데 그 부를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에게서 떠난다면 그것은 심각한 부작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대했던 풍요와 부를 얻지 못해서 믿음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풍요와 부를 받고 그것에 취해서 신앙이 변질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교해 본다면 부를 받아 마음이 변하는 쪽이 월등히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천적으로 사람에게서 부를 제거하는 것이 이러한 부작용을 억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늘 조금 모자라게 주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께 필요를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들어가려는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굳이 부와 풍요를 주시려는 것일까요?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세상을 디자인하셨습니다. 인간은 풍요롭고 비옥한 땅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은 결코 생존을 위한 최소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인간은 그것을 통해 자원을 얻을 수 있고 그것으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풍성하게 주시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적당한 먹거리를 던져주면서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공급하시면서 그 사랑의 공급을 기억하라는 인격적 요구를 하시는 것입니다.

모압평지에 서서 이 설교를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겸손이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혹시 합격한 겸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황과 사람의 마음에 때라 시시각각 변합니다. 겸손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라 먼저 복을 주시고 겸손 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겸손이 있겠습니까? 부와 풍요는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축복의 출처를 기억하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축복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