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9:9-21
9: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9: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네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9:11 사십 주야가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9: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내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9: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9: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너로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9: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 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손에 있었느니라
9: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
9: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에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었노라
신09: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케 하여 크게 죄를 얻었음이라
9: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 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9: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9:21 너희의 죄 곧 너희의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살라 찧고 티끌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 내리는 시내에 뿌렸었느니라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제일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모세 자신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2장에서 하나님이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기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은 모세의 중보의 기도로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품고 하나님께 중보했고 하나님은 그 용서와 사랑의 중보를 통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보가 대조되고 있는데 만약 모세가 중보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광야에서 소멸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났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의 중재를 통해서 하나님이 화를 푼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의 중보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내산과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재신임 과정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대속의 중재가 성취되기를 기다리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중재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제자들을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것이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23 」입니다. 서로 용서하면 서로 용서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그 죄는 사해집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모세의 중보에 의해 다시 기회를 얻었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십자가로 구원의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브리서 8:6 」

 

죄로 인한 징계와 멸망이 하나님으로 인한 자비와 구원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보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이스라엘은 모세의 중보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제나 지금이나 죄에 대해서 진노하십니다. 죄는 진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중보할 수 있을 때 진노는 자비로 바뀝니다. 진노를 자비로 바꾸는 힘은 중보하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서로 중보하면 서로 자비를 얻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주어지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