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11:22-32
11: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하면
11:23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얻을 것인즉
11: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하수라 하는 하수에서 서해까지라
11:25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 밟는 모든땅 사람들로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11:26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11: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11: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11:30 이 두 산은 요단강 저편 곧 해 지는 편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11:31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얻으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할지라
11:32 내가 오늘날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

 


모세는 이스라엘이 강대한 나라들을 이기고 그 땅을 취하게 되는 것이 이스라엘이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9장의 지적을 다시 강조합니다. 축복은 이스라엘이 했던 과거의 어떤 행동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정직하거나 의롭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 아닙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였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갔고 그 과거의 결과가 아닌 오직 약속에 의해서 자격없이 주어지는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신앙은 선택의 여정입니다. 사용하는 말과 태도로는 사람과 신앙의 본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결정적일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그 추구하는 가치가 드러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유세하는 말로 시민에게 선택받았으나 결정적일 때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를 선택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을 봅니다. 섬겨야 하는 선출공무원의 좁은 길을 선택하지 않고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권력을 사용하고 성적 쾌락을 위한 위력으로 행사하였으니 그 선택에 의해서 스스로 망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이 풍성한 것은 그 이전 민족이 풍성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광야의 제한은 사라지고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고 살라고 하는 것은 또다시 귀찮은 제한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을 선택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제한해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신앙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제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축복과 하나님을 반대할 저주의 두 갈래 길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면 축복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명령을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하나님이 독재적이고 파쇼적이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없으면 인간은 인간이 만든 등급의 질서 안에서 사람을 축복과 저주를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얽혀 산다면 고통을 양산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두 갈래 길을 제시하면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게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스라엘이 강대한 민족을 몰아낼 때 그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이길 수 없게 될 것인데 그것은 오직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명령을 지켜 순종할 때의 조건입니다. 듣고 따르고 의지하는 것은 믿고 신뢰하여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믿음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하시는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유익을 위해서 복종한다고 하여도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면 그 유효기간에는 반드시 한계가 올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의 선택에 어느 누가 저주를 택하겠습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 것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율법을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고 말씀에 따라 삶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미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갈래 길은 매일같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길이 결코 제한과 손해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자유와 형통의 길인 것을 믿고 후회 없이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