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12:1-7
12:1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12:2 너희가 쫓아 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12:3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12:4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12: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12: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12: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창조적 파괴」는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가 처음 사용한 경제학 용어입니다. 기업경제의 원동력의 핵심은 낡은 것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 것과 파괴하고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은 지성이 아닌 영성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옵니다. 알은 새의 세계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려는 새는 반드시 그 세계를 파괴해야만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말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면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합니다.

 

파괴라는 말이 무섭고 폭력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틀림없이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는 시대에 서 있습니다. 이미 파괴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합니다. 새 술을 빚었으니 새 부대가 있어야 합니다. 전환의 사고라는 새 부대가 없으면 새 술이라는 시대를 담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의 혼란의 시대가 지나가면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코로나는 인간이 기획해서 만든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 중대한 역사적 도전에 응전하는 것뿐입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이미 파괴되고 있는 쇠락의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창조적 발상으로 전환해야만 생명력이 이어질 것입니다. 변화는 당황스러운 것이지만 변화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변화를 읽어내고 일어설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대를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의 때에 기존의 가치를 버리지 못하면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면 가치를 판단하는 이전의 사고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주변의 환경을 파괴하여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을 담지 못합니다. 예배의 형식은 있으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가 없습니다.

 

일본 그리스도인들 중에 집안의 불단을 없애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집안의 불단과 기독교 신앙이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힘겹게 용기를 낸 사람도 자기 손으로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고 목사에게 부탁합니다. 목사가 망치 들고 출동하여 불단을 부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성도가 스스로 불단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불단에 신성이 있어서 보복이 두려운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에게로 전환되지 않은 것입니다. 파괴하지 못한다면 그 허상을 허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입니다. 수정하고 보완하려는 합리적 생각은 사실은 비겁 또는 나태여서 결국 혼합하게 될 것이고 혼합은 이도 저도 사용하지 못하고 마는 변질입니다. 높은 산과 작은 산 푸른 나무 아래 있는 우상의 전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와 신상을 찍어내고 불사르고 나면 완전히 파괴된 폐허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예배의 전을 만들어 놓은 후에 우상을 부순 것이 아닙니다. 먼저 파괴하고 폐허를 만들고 나면 하나님 예배가 보입니다. 우상을 파괴해야만 하나님 예배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5절에서 말씀하신 택하신 곳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파괴를 비인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파괴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인 순수를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