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20:1-9
20:1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0: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20: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20: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20:5 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20: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20:7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
20:8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20:9 백성에게 이르기를 필한 후에 군대의 장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사사기에 보면 미디안과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사 기드온은 전쟁을 위해 백성들을 소집했는데 군사를 모아보니 그 수가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적의 수는 13만 5천 명이니 턱도 없는 열세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그 수가 너무 많다고 하시며 일부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속이 탔지만 순종했습니다. 3만 2천 명 중에 무려 2만 2천 명이 집으로 돌아갔고 겨우 1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1만 명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추려내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소집된 백성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때 손으로 물을 움켜 핥아먹은 사람이 있었고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머리를 물에 처박고 마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은 사람은 무기도 땅에 내려놓았겠지요. 무방비 상태로 허겁지겁 물을 마신 사람은 다 귀가 조치되었습니다. 물만 먹고 갔습니다. 개수해보니 1만 명 중에 다시 9천 7백 명이 탈락되었습니다. 긴장을 유지하면서 손으로 물을 움켜서 먹은 사람은 고작 3백 명뿐이었습니다. 적은 여전히 13만 5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제야 만족하셨습니다.

 

정예(精銳)의 말뜻은 정밀하고 날카롭다는 뜻입니다. 정예부대는 빈틈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의 자격을 가진 정예 요원를 선발하여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도끼눈을 뜨고 물을 마시던 기드온의 정예부대는 3백 명으로 13만 5천 명의 대군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영적 긴장감과 헌신을 유지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물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20:1 」사람은 숫적 우세와 열세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싸움이란 기 싸움에 밀려버리면 이미 승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어법으로 무서우면 차라리 집에 가라는 빈정거림이 아닙니다. 전쟁에 임하는 정신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고 정예의 자격이 없을 때는 가차 없이 전투력에서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줄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은 손해 보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7장을 기억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한 이유가 그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신명기 7:7-8」

 

하나님 나라의 전투력은 병력의 수나 무기의 우월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에 있습니다. 그 자신감 안에서 제사장은 군사들에게 순종과 헌신을 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헌신된 정예요원을 선발하기 위해서 징집 면제자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새집을 지은 사람, 둘째는 새포도원을 지은 사람, 약혼한 사람, 두려워 하는 사람입니다. 새것, 새집,새포도원,새신부라는 것은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기 쉬운 것들입니다. 새것을 사고나면 그것에 흠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고 새차를 사고나면 조그만 긁혀도 속상해서 잠을 못 이루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마음이 좁아진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취하라고 합니다.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에게는 정예의 자격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습니다. 쟁기를 잡았으면 쟁기 일을 해야 할텐데 이 걱정 저 걱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그것에 마음을 쓰면 앞으로 나가야 하는 쟁기 일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푯대를 따라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삽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도전과 순종을 두렵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 때문에 못 하고 두려워서 주저앉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많으나 제자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자신에게 얽매이지 않고 영적 싸움에 있어서 정밀하고 날카로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징집에 열외되는 면제 대상자의 명단이 발표되는 다행스러움이 아니고 어떤 이유이든 정신력이 날카롭지 못한 병력을 배제하고 군사를 정예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면제를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면제를 기뻐하지 않고 면제를 면제받아 그것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지원한다고 다 용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지원에 합당한 헌신 된 자를 용사로 쓰실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은 오늘도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새집과 새직장과 새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이미 면제 대상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에서 지지 말고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