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143장 1-12절
143: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143: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143:4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143: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143: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143:9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143: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143:11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143:12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표제어에는「다윗의 시」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했던 70인역(LXX)에는 표제어를「그 아들이 그를 추격할 때에」라고 썼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고 아들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의 비참한 기도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고통스러운 광야가 다시 시작되는 사건이지만 다윗은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무앨하12:10」

 

다윗은 권력이 안정되었을 때 불륜에 눈이 돌아 충실한 부하 우리야를 살인 교사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 후에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다윗이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죽었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징벌이 예언되었습니다.

 

아들의 칼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은 그것이 실현되고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43편은 다윗이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를 응징하기를 구하던 다른 기도와는 달리 먼저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세상 지식 중에 가장 어려운 지식은 자신을 아는 지식입니다. 자신을 발견한 다윗에게 참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143:2」 죄 많은 인생의 고단한 기도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가 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43편을 바울적 시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신칭의」 즉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으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의 직접적 배경이 되는 시편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이 로마서의 말씀은 시편 143편과

 

시편 14편「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편 14:1-3」과 더불어 루터의 이신칭의의 전제, 선한 것 없는 인간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인간 이해를 전적타락 (Total Depravity) 으로 규정했습니다. 신앙 초기에는 잘 알지 못했으나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이 없고 모든 육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부터 타락한 상태라는 것에 동의하고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지식보다 중요한 지식은 자신의 죄 됨을 깨닫는 지식입니다. 다윗의 시편 143편이 위대한 것은 의와 선을 지켜낸 믿음이 아니라 선한 것이 없음을 깨닫고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선의 출처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