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로마서 6:12~23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바울은 인간의 삶을 죄의 종된 사람과 의의 종된 사람으로 양분합니다. 무엇이 죄의 종이고 무엇이 의의 종인가를 말하기 전에 인간이 반드시 무엇인가의 종이어야 하는가라는 저항에 직면합니다. 맥밀란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노예화의 진단을 알기 쉽게 표현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의 노예가 되고 만다」 미움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는 더 빠른 속도로 예속됩니다. 이것을 참고해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언제든지 무언가에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에 철학을 풍미했던 최고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가 말한 노예 된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의 노예인 자가 어떻게 자유일 수 있으랴」 바울과 세네카의 대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만, 그들이 만났다고 하여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충분히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노예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엔 세 부류가 있습니다. 세상의 종으로 사는 사람과 자신의 종으로 사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같은 말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세상을 섬기고 사는 것입니다. 종이라고 표현되었지만, 그것이 싫으면 주인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괜찮습니다.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인 된 삶과 하나님이 주인이 된 삶의 차이입니다. 자신을 주인으로 삼으면 죄는 자신을 노예화합니다.

 

하나님과 그 법을 주인으로 삼고 살면 죄의 함정을 이기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엄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의는 세상에 대한 것이기 이전에 자신에 대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다움과 존엄함을 지키고 사는 삶,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곧 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던 자유를 자랑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로마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바울은 스스로 예수님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종의 헬라어는 둘로스(δουλος)입니다. 한국어는 종으로 번역하였고 일본어도 しもべ(종)로 번역하여 완곡하게 표현하였지만, 원어의 의미는 노예입니다.

 

일본어 번역은 6장에서는 노예로 번역했습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죄는 인간을 억압하여 자유와 해방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인간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겠습니까? 단언컨데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뭍으로 걸어나올 수 없습니다. 죄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의로운 삶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의에는 은혜라는 보상이 있듯이 죄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그 법적 책임을 공포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혹시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에 항변하겠지만 사망에 대해서는 아무도 논쟁할 수 없습니다.

 

기름때가 물로 씻어지지 않듯이 죄는 피로만 씻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래서 세상에서 자유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매인 사람입니다.

 

존 웨슬리의 고백입니다. 「나는 표시가 붙은 인간이다. 그리스도의 표시가 붙은 인간이다. 그러나 의의 노예이지 죄의 노예는 아니다. 순결의 노예이지 부도덕의 노예는 아니다. 나는 자유의 노예이지 방종의 노예는 아니다. 주님 나라의 노예이지 세상 군중의 노예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노예이지 부의 노예는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쇠사슬에 묶인 노예이므로 주님 사업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