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로마서 7장 1-6
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이 말을 듣던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되물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합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자유를 위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 되었고 자유와 권리를 속박한 권력과 기득권은 그것을 내어놓으려고 않기 때문입니다. 불공정과 억압에 대해서 싸우면서 한편 땀 흘려 일해야 경제적으로 겨우 자립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회적 인간은 잠시간의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법과 제도와 행위로 추구하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이 살아있는 한 완전한 상태의 유토피아는 오지 않습니다.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의자를 바꾸어 앉겠지만 속박과 기만은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타락한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인간 안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고 죄를 범하고 있고 또 범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참 자유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는 아무것에도 구속을 받지 않는 상태나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어서 통제를 받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죄를 부리는 악한 영의 궤계로부터 해방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자유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의도와는 달리 구원의 방편이 아니라 정죄의 방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율법의 의도가 선한 것일지라도 인간은 율법은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었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인간은 정죄를 당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죄 앞에서 의지 약한 인간을 구속하고 속박했습니다. 율법이 목적이 아니고 구원이 목적이라면 계약상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약이 새로워졌습니다. 율법을 준수한 그리스도가 율법은 지키지 못한 인간의 정죄를 대신 받아 죽으시고 그것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계약입니다. 승리한 결과를 알면 자유합니다. 자유라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이 승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이라고 했고 골로새서에서는 「율법은 그림자일 뿐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본체이시고 성취」라고 했습니다.

 

오늘 로마서 본문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자유로워진다고 했습니다. 계약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계약의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율법의 계약이 끝난 것입니다. 얽매고 있었던 것이 죽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벗어나지 못하던 육체는 율법의 의해 이중으로 고통받다가 율법의 정신인 그리스도가 오셔서 율법을 완수하시고 대속하심으로 변경할 수 없는 확정적 자유을 주신 것입니다.

 

어제 본문에서 노예에 대해서 말하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유를 말합니다. 그러나 상반된 것은 아닙니다. 죄의 노예가 아니라 의의 노예가 누리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마귀에 속했고 의는 그리스도에 속했습니다. 마귀가 죄로 유혹하는 것은 승부를 다시 번복해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이해가 부족한 성도들을 속여보려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미 이기셨습니다. 복음 안에서 자유하십시오.